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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알렉산더 대왕 일대기 "(김헌 교수)

by 만나 from heaven 2021.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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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벌거벗은 세계사 9회, 알렉산더(알렉산드로스) 대왕

서울대 인문학 교육원에서 근무하는 김헌 교수님과 그리스 마케도니아에서 태어난 엄청난 인물 알렉산드로스 대왕(알렉산더:미국식 발음)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았답니다.

"나는 세상 끝의 세상을 다 보겠다" 21살때 대부분의 그리스를 통합하고 동서 문화 교류에도 큰 역할을 한 사람 알렉산더 대왕은 그리스, 이집트 , 페르시아, 인도 일부까지 삼 대 륙을 정복했던 고대 유일한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알렉산더(알렉산드로스)의 탄생과 어린 시절

그리스 마케도니아의 왕 필립포스 2세는 올림 피아스의  공주와 결혼하여 알렉산더를 낳았다. 필립포스 2세는 그리스 최고 영웅인 헤라클레스의 자손이고 어머니는 아킬레우스의 자손이었다고 합니다. 알렉산더의 태몽이 심상치 않았다고 하는데요.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번개가 어머니 배를 쳤다고 합니다. 여기서 번개는 제우스의 기운이었고 번개가 배를 쳤다는 건 알렉산더가 제우스의 아들이란 뜻으로 해몽을 했다고 해요. 알렉산더가 10대 시절 한 상인이 최고의 명마 부케팔로스를 데리고 와 마케도니아에서 이 말을 탈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라고 물었을 때 많은 병사들이 도전했지만  아무도 부케팔로스를 타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것을 본 알렉산더는 아버지에게 말을 사달라고 합니다. 부케팔로스의 가격은 13 달란트로 병사 1000명의 연봉이었다고 해요. 아무도 탈수 없는 말을 알렉산더는 손쉽게 길들였다고 하는데요. 그것은 말이 자기의 그림자를  보고 놀라는 모습을  관찰했다고 합니다.  알렉산더는 그 모습을 보고 말이 자기의 그림자를 보지 못하게 하여 부케팔로스를 탈 수있었다고 합니다.

 

그 모습을 본 필립포스 2세는 "아들아 네게 맞는 왕국을 찾아라"  라고 말을 했고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아버지가 말한 건 칭찬이 아니다, 널 왕국에 서 쫓아내려고 한다며 무서운 사람이니 조심하라고 가르쳤다고 해요. (필립포스 2세와 어머니는 사이가 안좋았음)

 

알렉산더의 선생님 아리스토텔레스 

필립포스 2세는 알렉산더의 비범함을 알고 자신의 어릴 적 친구 아리스토텔레스를 알렉산더의 선생님으로 모셔옵니다. 여기서 필립포스가 아리스토텔레스를 데리고 올 때 큰 보상을 약속했다고 하는데요. 그 당시 왕권강화로 인해  아리스토텔레스의 고향이 파괴되었는데 왕은 고향을 재건시켜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아리스토텔리스를 데리고 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알렉산더는 개인교습이 아닌 그룹 교육을 받았는데 장차 지휘관이 될 엘리트 귀족 자제들과 같이 교육을 받았답니다. 학문은 윤리 정치, 수사학(언별 술) 자연학, 의학 등을 배웠는데 알렉산더는 "아버지는 나에게 육체적 생명을 주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생을 아름답게 사는 법을 배웠다"라고 했답니다.그중 수사학은 알렉산더가 전쟁에 나갔을때 큰 도움이 되었고  특히 일리아스 책이 알렉산더에게 영향을 많이 주었는데 최고의 전술 책이라 극찬하며 매일 읽었다고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스 최고의 사상가.
일리아스: 고대 그리스 최대의 서사 시인 호메로스가 트로이 전쟁을 소재로 쓴 장편 서사시. 
수사학: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수사학은 곧 남을 설득하는 기술이었다. 

 

 

 

 

알렉산더의 백전백승 이유 

필립포스 2세가 암살당하자 알렉산더는  20살에 왕에 오릅니다. 그리고 22세에 위대한 업적의 시작 페르시아(현재 터키) 원정을 가게 되는데  그리스에서 페르시아, 인도까지 가며 백전백승을 하게 된답니다.  그 이유를 세가지로 나눠본다면

 

  • 첫 번째 전략 : 뛰어난 전술 , 전략을 잘 짰다. 특히 팔랑크스 전법을 많이 썼는데 보병들이 전진할 때 옆과 뒤를 기병들이 보호해주는 전술을 썼다고 합니다.(알렉산더는 창의 길이를 3배로 바꿈 )
팔랑크스 전법: 고대 보병 전법으로 방패와 창을 든 다수의 병사들을 고슴도치처럼 밀집대형으로 배치하여 근접전을 벌이고 적을 압박하는 방법

 

 

  • 두 번째 전략: 포용정책과 공포 정책을 썼다고 합니다. 뛰어난 언변술로 좋은 조건을 제시하고 협상하며 싸우지 않고 나라를 정복하는 방법과 자신을 거역하는 나라는 싸움으로 철저하게 짓밟는  위협적인 공포 정책을 썼다고 합니다.
  • 세 번째 전략: 스스로 자신을 신격화했다고 해요. 제우스의 아들 알렉산드로스가 지휘관이라는 것을 내세우고 반대로 상대방에게는 사람이 아닌 신이 왔다고 하는 기선을 제압하는 전략을 사용했다고합니다."저기 앞의 저들은 허수아비에 가깝다, 저들은 자신의 의지로 싸우지 않는다 저들은 노예다, 우리는 위대한 그리스 문명을 야만인들에게 전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신의 명령이다" 라며 병사들의 사기를 높여주는 연설을 했다고 합니다.

 

알렉산더의 죽음 
백전백승을 하던 알렉산더에게 위기가 찾아오는데요. 12년 동안의 오랜 전투에 지친 병사들의 불만을 터트리게 됩니다."세계 끝까지 가는 건 폐하에게 어울릴지 모르지만 저희에게 는 어울리는 일이 아닙니다. 저희는 지금 지치고 힘들고 피곤하고 기력이 다 쇠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얻었지만 지금 저희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습니다"라는 병사들의 말에 알렉산더는 바벨론으로 복귀를 결정합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병에 걸려 12일 동안 앓다가 32살에 죽음을 맞게 됩니다.
알렉산덕의 업적 
알렉산더의 원정으로 정복지에 다수의 도시를 건설하여 동서 교통과 경제발전에 기여하였고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문화를 융합한 헬레니즘 문화를 이룩하였다. 불교미술에도 영향을 끼치며 이로인해 간다라 미술이라는 새로운 미술 양식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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